심리칼럼

성태훈의 아빠심리학15 - 버릇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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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우상담센터 작성일17-04-04 13:49 조회1,3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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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은 ‘예의가 바르지 않다’, ‘버릇이 없다’ 등의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사실 특별히 아빠가 막돼먹어서 그랬던 건 아니다. 예의범절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서부터 뜨거운 햇살 아래 있으면서도 교장선생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꼿꼿이 서있어야 했고, 밥을 먹을 때는 어른이 숟가락을 들어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교과서에서 배웠었다. 요즘 세상은 애들이 쓰러질 정도로 길게 연설을 하면 교장 선생님이 교과부에 끌려갈 지경이고, 어른보다 먼저 숟가락을 들면 안된다는 걸 강조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모두 어른을 공경한다는 제목 하에 해오던 행동이지만, 요즘은 이런 행동을 아이들에게 말하는 게 어색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아이들은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공경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아빠들은 어려서 예의바르게 행동했지만, 때론 반감이 들기도 했다. 공경하고 싶지 않은 어른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었지만, 참았다. 더 큰 대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지금의 아빠가 있기까지는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어도 행동을 조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참고 억제하며 사회적 규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아이들에게도 도덕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주객이 전도되어 아이들보다 도덕성이 우선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예의가 무엇이고, 도덕이 무엇인가? 소위 사회적 규범이라는 것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이 조금씩 참아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각 개인은 10만큼 가지고 싶어 하지만, 집단원 전체에게 10씩을 나눠줄 수 없기 때문에, 개인들이 조금씩 양보해서 7정도만 가지게 함으로써, 집단이 유지되게 하는 것이다. 물론 강자들은 약자를 누르고 일시적으로 10을 가져갈 수 있겠지만, 현명한 강자는 약자를 눌러서 없애버리면 자신이 10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줄어든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규칙을 따른다. 애초에 10을 가질 수 없는 약자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예절의 목적은 집단의 이익이고, 각 개인의 이익이다. 이제는 더 이상 뜨거운 여름날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의 30분짜리 연설을 듣지 않아도 되는 시대이다. 아빠가 성공하는데 필요했던 규칙들도 아이들에게는 조금 바뀌어서 적용이 되어야 한다. 예전에는 학교를 감독하러 다녔던 교육감은 이제 학교를 지원하러 다닌다. 공공의 이익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예의를 강요하기 보다는 아이가 얻고 싶어하는 이익이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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